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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업로드/Reading으로 Lead하라

‘도저히 싫은 사람’에게 공감하기, Against Empathy (출처 : 인스피아)

by 인사 잘하는 라이언 2022.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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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싫은 사람’에게 공감하기, Against Empathy (출처 : 인스피아)

 

1. 공감의 시대, 행동보단 그 대상에 대한 고민

우리 시대는 가히 (과잉) 공감의 시대라고 할만 하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랄까?)

공감을 강조하는 책이나 강연들이 쏟아지고, 정치인들도 그리고 직장에서도 공감을 정답이라고 내세운다.

내가 속해있는 HR팀의 중요한 역할에도 '공감'이란 키워드는 어디든 빠지지 않는다.
그럼 공감은 무엇인가? 공감이란 연민의 감정과는 사뭇 다른,

타인의 상황을 내 것인 것처럼 상상하는 능력인 '인지적 엠퍼시(cognitive Empathy)'로 정의된다.

그런데 우리는 김스피 저자의 말처럼 공감이라는 '행동'을 강조해왔을 뿐
공감의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서 별로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2. '도저히 싫은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일본의 NPO 억셉트 인터내셔널 대표 나가이 요스케는 소말리아 테러단, 투항자를
구호하고 갱생 및 교섭하는 일을 하는. 즉, 전세계에서 가장 공감받기 어려운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하는 인물이다.

그가 쓴 책 <공감병>에서 이렇게 말한다.

본문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포털 사이트의 기사나 사연에는 '공감' 아니면 '화나요'로 의견이 양분되어 수렴된다.

내가 요새 거의 빠져..살고 있는 유튜브만 보아도 좋아요 또는 싫어요 둘 중 하나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공감할 대상들은 대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의된 순결한 또는 바른 사람'이어야 한다.

ex. 기초수급자인데 월 10만원 넘게 술이나 담배값으로 써버리는 사람 등이 아닌

 

다만, 처음부터 공감할만한 대상이 순결한지 또는 적절한지는 그의 타고난 권리와는 무관하다.

옛 중국의 사상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선인인 사람(성선설)과 악인인 사람(성악설)이 누가 있겠는가.

 

3. '나에게'만 공감하는 사람들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폴 블룸의 책인 <공감의 배신>에서는 공감이 갖는 가치를 아예 부정하진 않지만

공감이 사회적으로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잘못된 결과를 낳기 쉽다고 한다. '모두에게 공감해야 한다'고

'착한 말'을 하지만 실제로 공감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간의 본능이라 말한다. 그는 "사실은 (공감이 부족해서 문제라기 보다는) 공감이 과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강조한다. 엄밀하게는 '나(우리편)에 대한 공감'이다.

 

최근 들어 상당히 공감가는 내용이다. 흔히 지인들과 '착한사람 증후군'이라고 부르는데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도 경험적으로 썩 좋지 못한 결과들이 초래된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편에 대한 공감'이 어떻게 '상대에 대한 혐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편에 대한 공감이 지나치면 상대편에 대해 공감하지 않기라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저자는 재미있는 글을 인용했는데 다음과 같다.

 

이 말인즉슨, 공감은 얼마든 자신(과 상황)을 중심으로 '조절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영우처럼 훌륭하게 일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공감받을만한' 장애인인가?

나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은 '공감하지 않아도 되는 나쁜' 장애인인가?

 

'좋아요'만 공감이 아니라, '싫어요'도 공감이 될 수있는 사회.

공감을 할 권리, 하지 않을 권리, 공감 받을 권리, 공감을 받지 않을 권리는 모두에게 있다.

 

종교와 정치의 이슈도 과잉-결핍 공감의 이슈와 본질을 같이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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